종교가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종교는 본래 영원한 생명과 구원, 이상적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종교가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종교의 역사는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어 왔으며, 종교를 배경으로 수많은 전쟁이 치러졌습니다. 이러한 이중성이 남아 있는 한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하기는 요원한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분파 갈등과 극복의 지혜

초대교회 역시 분열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파와 아볼로파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고린도는 로마제국에 의해 재건된 신흥대도시로 매우 개방적이었고, 이주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교인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다니는 동안 교회를 맡았던 아볼로에게 추종자들이 생겨나면서 바울이나 베드로 추종자들과 반목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들은 그 지체라고 강조하며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낳았으며, 아볼로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의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신자들이 단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바울이 경쟁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뛰어난 학자인 아볼로가 무명의 천막 제조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복음을 배울 만큼 겸손했고, 바울의 동역자로서 본분을 지켰기 때문에 분파를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동서교회 대분열의 역사적 배경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권력과의 밀착으로 세속화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1054년 동방의 그리스 정교회와 서방의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갈라진 것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된 것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동서교회 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교황의 수위권 문제였습니다. 서방교회가 신의 대리권을 내세우며 교황의 절대권을 주장한 반면, 동방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령에 관한 필리오케 논쟁도 분열을 촉발했습니다. 서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온다고 주장한 반면, 동방교회는 성부에게서만 온다고 고수했습니다. 성상 숭배, 성직자의 독신 제도 등에서도 양측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탄생

서방 교회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분열됩니다. 종교개혁의 가장 큰 원인은 권력과 밀착된 교황의 부정부패였습니다. 십자군 원정으로 교황권이 쇠퇴하고, 아비뇽 유수 사건을 통해 교황의 권위가 추락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교황 체제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며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인간의 구원이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 가능하다는 의인론을 주장했고, 교황 대신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습니다. 만인 제사장론을 내세우며 성직주의와 교권주의를 비판했고, 두 왕국론으로 정치와 교회의 야합을 척결하고자 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회 개혁에 대한 열망과 함께 정치·경제·사회적 격변기가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의 등장과 봉건주의 체제의 붕괴로 신흥 시민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권에서 벗어나려는 영주와 신흥 시민계급의 이익이 맞물리면서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분열 양상

한국 개신교 역시 내부적으로 큰 갈등을 빚으며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었습니다. 1950년대 초까지 하나의 줄기를 유지하던 장로교회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하게 됩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고신측과 참여한 측 사이에 해방 후 큰 논란이 발생했고, 결국 1946년 고려신학교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신학적 이유로도 분열이 나타났습니다. 기독교장로회는 1953년 신학의 자유화를 선언하며 분립되었고, 통합·합동·대신·개혁 등은 교권 다툼과 WCC 문제를 놓고 갈라섰습니다. 감리교회 역시 일제 말기 교권을 장악한 측과 탄압받은 측 사이의 갈등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했습니다.

개신교는 민주적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로 늘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교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계로 갈등 중재가 가능하지만, 개신교는 신학적 노선과 교권 다툼이 발생할 경우 합의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당부

기독교 역사는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갈라지고 적대시하는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예수의 마지막 당부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인 줄 알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분열 행위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분열과 분파적 행위는 육체적 욕망에 따른 것이며, 디도는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은 스스로 단죄를 하면서 죄를 짓는다고 밝혔습니다.

21세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문명 전환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인간 중심주의, 소유 중심주의, 물질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생명 중심주의, 우주 중심주의, 신 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종교가 제 자리를 찾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집중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분열은 상대방을 미워하게 만들고 적대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종교 본연의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