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앤북스 코너, 디바인 매트릭스, 느낌이 현실이 된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1장 "텅 빈 공간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함께 읽어봅니다. 한 모금의 커피 향이 번지는 아침, 책장을 넘기며 비어 있다고 믿어 온 것들 사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가을을 더 깊게 만들어 줍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의 오래된 이야기

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비와 곡식, 별과도 대화할 수 있었고, 땅과 하늘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조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대지와도, 이웃과도, 자신을 있게 한 근원과도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홀로 길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생명을 준 바로 그 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주변과 공존하는 대신 맞서 싸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조상이 남긴 기억이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는 몸을 치유하고 비를 부르고 먼 곳의 존재와 소통하던 능력을 떠올렸습니다. 그 기억을 밖에서 되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져, 몸을 고치는 기계와 곡식을 키우는 약품, 멀리서도 말을 전하는 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힘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은 바깥의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더욱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 전설이 오늘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안의 세계보다 바깥의 세계에 훨씬 더 집중하는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질병을 막고 자연을 통제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쓰지만, 자연과의 조화에서는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에 빠져도 도울 방법이 없다고 느끼고, 먼 곳의 전쟁 앞에서는 평화를 빌 뿐이며, 세계가 종교와 혈통, 국경으로 갈라지는 동안 핵전쟁의 위협에도 무뎌져 갑니다. 이 전설의 결말은 아직 쓰이지 않았고, 그 결말을 쓸 사람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첨단 기술이 아닌 '내면의 기술'이었다면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토록 발달한 문명이었다면 토스터나 전자레인지, 비디오 녹화기 같은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문명의 수준을 사람이 만든 물건으로 가늠하는 습관이 그만큼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내면의 기술로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꾸렸을 수 있습니다. 바깥의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삶을 유지하고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면, 유적에서 기계의 흔적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문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자연을 살펴보는 일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분리되어 있다는 믿음을 흔든 발견

20세기 물리학자들은 몸과 우주를 이루는 물질이 300년 가까이 신봉되어 온 엄격한 물리 법칙만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극소의 세계에서는 입자들이 서로 분리된 개체라는 법칙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서로 이어져 있으며 그 한계가 없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몸 안에 시간이나 공간, 심지어 죽음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초공간적'인 우주, 곧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이 실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연결성이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거나, 나비의 날갯짓이 먼 곳의 날씨를 바꾼다는 표현으로 사람들은 연결의 존재를 막연히 알아 왔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연결이 바로 우리 때문에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사랑과 치유에서 꿈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자신이 겪는 나날의 삶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우주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은 거창한 수행이 아니라 시각을 살짝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고, 그 작은 변화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문을 엽니다.

빛보다 빠르게, 동시에 두 곳에

이 연결이 허황한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 실험실의 결과입니다. 빛의 입자가 수 킬로미터 떨어진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관찰되었고, 몇몇 실험에서는 정보가 출발지에서 떠나기도 전에 도착지에 먼저 닿아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입자를 똑같은 성질의 쌍둥이 입자 둘로 나누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22킬로미터 떨어뜨려 놓은 실험에서는, 두 입자가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할 때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똑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분리된 입자끼리는 소통할 방법이 없는데도 둘은 마치 하나의 존재처럼 움직인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양자 얽힘이라 부릅니다.

양자 얽힘 현상으로 밝혀진 우주 만물의 즉각적 연결
양자 얽힘 현상으로 밝혀진 우주 만물의 즉각적 연결

한 입자가 변하면 다른 입자도 즉시 똑같이 변하고, 그 거리가 몇 미터이든 은하계만큼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 가지 단서가 필요합니다. 두 입자 사이에서 신호를 실어 나르는 무엇인가가, 곧 연결해 주는 매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은 그런 매질이 없다고 보았기에 이 결과는 현대 과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성공한 실패'로 불린 실험

우주 공간을 채우는 무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래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별과 별 사이를 이어 주는 그물이나 거미줄 같은 것을 상상했습니다. 그 개념은 여러 이름으로 이어져, 그리스 시대에는 신들이 숨 쉬는 공기이자 제5원소로, 근대 과학의 거장들에게는 우주에 퍼진 투명한 물질로 여겨졌습니다. 19세기 이후에는 이 물질이 전기와 자기의 장으로서 빛이 이동하는 길이 된다는 설명까지 나왔습니다.

19세기 말, 두 과학자가 이 물질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실험을 설계합니다. 만약 그것이 우주에 가득하다면 지구가 그 속을 지날 때 일종의 '바람'이 느껴질 것이고, 바람을 타고 가는 빛과 바람을 거슬러 가는 빛의 속도에 차이가 날 것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날 때 더 빨리 도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어떤 방향에서도 속도의 차이가 감지되지 않았고, 이 결과는 오랫동안 우주 공간이 정말로 비어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실험은 '가장 성공적인 실패'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공기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존재가 예상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을 보여 줄 뿐입니다. 이 실험 이후 과학은 모든 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가정 위에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다 100년 가까이 지난 1986년, 더 정밀한 장비로 같은 실험을 재현한 연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우주 공간을 가르는 지구의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결된 어떤 장의 움직임이 감지된 것입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주 공간을 채우고 모든 것을 잇는 에너지장은 실험으로 존재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언어와 다른 세계의 법칙

과학은 자연과 우주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일 뿐입니다. 과학이 등장하기 전에는 연금술이나 점성술 같은 다른 언어가 쓰였고, 그 언어들도 생명의 기원과 질병의 원인,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의 틀을 제공했습니다. 문명은 오늘날의 과학 없이도 5천 년 이상 이어져 왔습니다.

17세기에 시작된 근대 과학은 세계를 수학 공식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섰습니다. 그 성과로 인공위성의 궤도를 계산하고 달에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원자의 극소 세계로 내려가자 기존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학문이 양자 물리학입니다. 양자란 에너지의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를 뜻합니다. 영화가 정지된 사진들이 빠르게 이어져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보이듯, 우리가 겪는 삶도 아주 작은 빛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뇌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붙인 결과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 결과 현대 물리학은 큰 세계를 다루는 고전 물리학과 작은 세계를 다루는 양자 물리학으로 나뉘었습니다. 두 이론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의 열쇠는 텅 비어 있다고 여겨지는 공간을 무엇이 채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텅 빈 곳이 아니라 가득 찬 곳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우주의 약 90%가 '행방불명' 상태로 보입니다. 우주의 10%에만 무언가 있다고 믿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공간이 비어 있다면 풀기 어려운 의문이 생깁니다. 휴대전화의 신호부터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이르기까지, 모든 에너지 파장은 어떻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요?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번지듯, 파장을 옮겨 주는 매질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공간이 정말 비어 있다고 상상해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는 칠흑같이 어두울 것입니다. 손전등을 켜도 빛의 파동을 전해 줄 매질이 없으니 빛이 어디로도 퍼지지 않습니다. 소리도 전해지지 않으니 무척 조용할 것이고, 열도 중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마른 연못에 돌을 던지고 물결이 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행히 그런 세계를 굳이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은 비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잇는 거대한 망이 존재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를 두고 양자 이론의 개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질의 배후에는 의식적이고 지성적인 마음이 있다고 추정해야 마땅하며, 그 마음이 곧 모든 물질의 매트릭스라는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세운 과학자 역시 우주에는 사자의 꼬리만 보일 뿐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사자가 너무 커서 전체 모습은 한꺼번에 보이지 않지만, 꼬리가 사자의 일부임은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더 큰 존재의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한때 하나였던 것은 언제나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 연결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주류 과학계는 우주가 130억~200억 년 전의 대폭발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폭발 직전의 우주는 완두콩 한 알보다도 작게 압축되어 있었고, 그 안의 물질은 서로 빽빽하게 결합해 있었습니다. 폭발과 함께 우주가 팽창하면서 입자들은 갈가리 흩어졌지만, 한때 하나였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쌍둥이 입자 실험도 같은 구조입니다. 원래 하나였던 입자를 둘로 나누었기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연결이 유지됩니다. 대폭발에서 나온 입자들도 한때는 물리적으로 하나였으니, 오늘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얽힘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하나였던 것들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든 아니든 항상 서로 이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연결을 이어 주는 에너지가 바로 모든 것의 '매트릭스'이며, 신화와 전승이 그물이나 거미줄로 그려 온 것과 같은 대상입니다.

삶을 바꾸는 세 가지 법칙

이 에너지장의 존재는 삶과 행동, 믿음, 일상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세 가지 법칙으로 이어집니다.

첫째, 만물이 이 장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삶의 한 부분에서 하는 행동은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둘째, 이 장은 홀로그램입니다. 모든 부분에 전체가 담겨 있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미 존재하게 됩니다. 기도를 멀리 보낸다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셋째,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내리는 선택과 앞으로 맞이할 경험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띱니다. 보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힘에 휘둘리는 희생자가 아니라 그 힘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일이 시작됩니다.